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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미부쿠로(新耳袋) - 현대 백물어 -
네번째 밤(第四夜)
키하라 히로카츠, 나카야마 이치로
카도카와 문고

 

제53화. 하코다산(八甲田山)

 

하코다산은, 아오모리(青森)현 중부에 있는

나스(那須) 화산대에 속한 활화산이다.

 

영화 '하코다산'을 보신 분은

이미 아실 것이다.

1902년 1월, 이 산에서

세계 산악조난사상 최대의 참사가 일어났다.

 

일본 육군 아오모리 보병 제5연대가

한지(寒地) 작전의 일환으로

병영에서 20km 남짓 떨어진

하코다산 기슭에 있는 타시로(田代) 온천을 향해

1박 행군을 간 것이다.

 

그러나 혹독한 눈보라와 맹렬한 한파 속에서

행군은 길을 잃고 3일 동안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하다가

210명 중 199명이 동사(凍死)한 것이었다.

 

썰매를 끌던 개도 동사해서 인간이 짐썰매를 밀었다.

그러면 땀범벅이 된다.

휴식할 때는 눈을 파서 참호를 만들고 들어가서 쉰다.

 

그러나 이 때, 온 몸의 땀이 순식간에 얼어서

전신동상(全身凍傷)을 입는다.

 

병사들은 몸이 얼어붙는 통증에

미친 사람처럼 옷을 벗으며 죽었다.

시체가 발견된 것은 5월이 되어서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한해서는 그런 기초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아오모리현에 있는 대학을 다니던 Y씨는

그런 지식이 전혀 없었다.

 

어느 초여름 밤, 가벼운 마음으로 밤 드라이브를 나섰다.

그 드라이브에 동행한 사람은 남자만 4명.

차 2대에 2명씩 나눠 탔다.

 

하코다산에 들어갔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그때까지는 쾌적한 드라이브였는데

어째선지 갑자기 차 엔진이 이상해졌다.

회전수가 점점 떨어졌다.

 

뒤에서는 친구들이 탄 차가 달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뒤차가 추월할 거라 생각했는데

왠지 차간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마침내 엔진이 꺼져, 차가 서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따라오던 차도

완전히 같은 타이밍에 정차했다.

그쪽도 엔진이 꺼진 모양이었다.

 

동시에?

 

"왜 차가 안 움직여? "

그러자 문득 차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밖에서 기척이 났다.

암흑에 싸인 도로 저쪽에서 뭔가 다가왔다.

퍼뜩 차창 밖을 봤다.

 

착, 착, 착 하고 무거운 구둣발 소리가 울려 왔다.

그러더니 수많은 남자들이 차를 둥글게 에워싼 것이었다.

남자들은 조용히 차 안을 보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그 남자들의 얼굴만 보였다.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전신이 올 블랙(all black)이어서였을까?

 

어쨌든, 남자들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Y씨와 친구를 보고 있었다.

"으아악―! "

Y씨와 친구는 비명을 지르며 차 키(key)를 죽기 살기로 돌렸다.

하지만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몇 번이고 키를 돌렸다.

'빨리 걸려라! 빨리 걸려! '

 

남자들은 아직 미동조차 없이

그저 차 안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단지 시동이 어서 걸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끼끼끼끽……, 부르릉――

시동이 걸렸다!

 

U턴을 하고 액셀을 힘껏 밟아,

아직 멈춰 있는 친구들의 차 옆을 빠져나와

전속력으로 아파트가 있는 히로사키(弘前)시를 향해 달렸다.

 

남겨두고 온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 뿐이었다.

 

친구의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2층에 있는 친구 집에 구르듯이 뛰어들어갔다.

불이란 불은 다 켜고, 남자 둘이서 어깨를 맞댄 채

와들와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

그저 그 말만 되풀이하며 서로 손을 꽉 잡고 있었다.

 

30분 지났을까, 1시간 지났을까.

아파트 주차장에 차가 서는 소리가 나고,

두고 왔던 친구 2명이 핏기없는 얼굴로 들어왔다.

그 친구들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가 싶더니

어깨를 서로 기대고 역시나 벌벌 떨고 있었다.

 

'똑같은 걸 봤구나. '

방 한복판에서 남자 네 명이 서로 몸을 꼭 붙이고

아침이 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착, 착, 착, 착 하는 구둣발 소리.

'쫓아왔나? '

 

착, 착, 착, 착.

그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설마! '

 

착, 착, 착, 착…….

소리가 바로 아래까지 왔다.

그리고 쿵, 쿵, 쿵.

나무 바닥으로 된 복도를 밟는 소리로 변했다.

 

쿵, 쿵, 쿵, 쿵…….

발소리가 계단을 올라왔다.

쿵, 쿵, 쿵, 쿵, 쿵…….

 

불쑥, 남자 얼굴이 문을 뚫고 나타났다.

 

환하게 형광등이 켜진 방 안으로

남자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전신이 검은색 군복.

들어온 남자는 여섯 명.

그 남자들이 Y씨와 친구들을 둘러싸고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 남자 오른팔을 갖고 싶어. "

 

다른 남자가 말했다.

"나는 발. "

또 다른 남자.

"나는 왼손. "

 

기절했다.

 

네 명 모두, 정신을 차려 보니 낮이었다.

'꿈이었구나! '

문득 방 안을 둘러보니, 흙 묻은 신발 자국이

그들을 둘러싼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발자국은 아파트 현관에서 복도, 계단, 집 안으로 처덕처덕 이어져 있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네 친구는 열병으로 앓아 누웠다고 한다.

40도 가까운 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Y씨는 그 일이 원인이 되어 대학을 자퇴하고

치바(千葉)의 부모님 댁에 돌아갔다.

두 번 다시 아오모리에 갈 생각은 없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군복 입은 남자 여섯 명이

군홧발을 울리며 아파트에 들어온 소리는

옆집이나 맞은편 집에는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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