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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미부쿠로(新耳袋) 두번째 밤
- 키하라 히로카츠, 나카야마 이치로 / 카도카와 문고

제35화. 고스트 버스터(ghost buster)

이것은 내 자신의 체험담이다.
5년 전 초봄, 신토(神道 : 일본 전통신앙) 연구가이자
점쟁이인 G씨라는 여성이
"고스트 버스터 의뢰를 받았는데 같이 안 갈래? "
라고 전화를 했다.

상세히 물어보니 어느 이자까야(居酒屋 : 선술집)에서 요청했다고 한다.
그 이자까야는 전국에 체인점이 있는 유명한 가게였는데
지점 중 오사카 남부 한복판에 있는 가게가 이상하다고 했다.

그 가게에서도 어느 한 방에만 기묘한 일이 생긴다.
손도 안 댔는데 테이블 위에 있는 술잔이 이동한다.
그리고 빠직 하는 소리가 나면서 금이 간다.
마신 기억도 없는데 술이 줄어들거나 없어지기도 한다.

손님들도 처음에는 자기들이 착각한 줄 알다가
기분이 나빠지거나 두통을 느끼고
등 뒤에 사람이 있는 기척을 느낀다.

그런 말을 하는 손님들이 늘고, 그 때문인지
사람이 전혀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기묘한 일이 생기는 것은
오히려 영업시간이 끝난 후라고 한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가게 사람이 그릇을 치우러 그 방에 들어가면
어째서인지 바닥 한 면이 흠뻑 젖어 있거나
벽에 남녀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또, 청소를 하다 보면 분명히 아무도 없을 그 방에서
사람이 얘기하는 소리가 난다.
아르바이트생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기분나빠하면서 하나 둘씩 차례차례로 그만둔다.

어쨌든 이상한 소문이 더 이상 퍼지는 것은
가게 이미지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밝혀내고 이상한 것을 퇴치해 달라고
가게 주인이 직접 의뢰를 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당장 동행하기로 했다.

전화를 받은 지 3일 후, 오후 1시.
의뢰인 측에서 손님이 없는 시간대를 지정한 약속시간이었다.
나는 8mm 비디오 카메라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G씨와 함께 그 이자까야로 향했다.

그 가게는, 어느 상업용 빌딩의 긴 계단을 끝까지 내려간 지하였는데
가게 관계자들이 입구에 한 줄로 서서 마중을 나와 있었다.
도쿄 본점의 점장과 사장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며 머리를 숙였다.
이거 제법 큰일이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하얀 기모노와 하카마※로 몸을 감싼 G씨는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곁눈질도 하지 않고 총총걸음으로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모두 허둥지둥 G씨 뒤를 쫓아가 보니
그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이 방이네요" 라고 G씨가 말했다.
"예, 어떻게 아셨어요!?" 라며 점장과 점원들이 조금 흥분했다.

보아하니 거기는 47인치 TV가 딸린 노래방 기기와
8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변형 테이블이 있었고
베이지색 벽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방이었다.

"이상한 일이 생기면 이 노래방 장비가 작동하지 않게 되거나
반대로 갑자기 스위치가 켜질 때도 있습니다.
수리 기술자를 불렀는데 원인을 모르겠다네요……. "

점장이 그렇게 말하자, 파랗게 질린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던 종업원들의 입에서도
기묘한 체험담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즉시 8mm 비디오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G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렌즈를 향하고
종업원들의 증언을 녹음했다.

G씨가 이상한 기계를 꺼냈다.
전자파형기(電磁波形機)같은 것이었는데,
듣기로는 그 기계로 영기(霊気)가 있는 장소를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G씨가 측정한 공간에서 파형기 바늘이 붕 돌아갔다.
큰 노래방 기기 앞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전기 계통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에 반응한 것인가?

"여기엔 엄청난 원한이 남아 있어.
나카야마 씨, 여기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어 봐.
뭔가 찍히는 게 있을지도 몰라. "

G씨의 말대로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짐작가는 것은 있었다.
벽 너머에 간이 발전기나 고압 전기선이 묻혀 있을 경우다.

때에 따라서는 그런 것들의 전기적 작용이
두통을 일으키거나, 그 두통이 원인이 되어
무엇인가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G씨의 파형기도 그 전기적 작용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내 그런 생각은 날아갔다!



폴라로이드 사진에 피바다가 찍혀 있었다.

베이지색 벽 한 면에서 검붉은 것이 방울방울 솟아나와
그것이 줄줄 흘러내리는 사진.
테이블 위에도 핏덩어리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사진을 현상하는 과정에서 얼룩이 진 것이 아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흰 접시와 물수건이
사진 속에서는 피 위에 선명하게 나와 있었다.
벽에서 흘러내리는 것과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의 질감도 달랐다.

"이거 보세요, 피! "
내가 놀라서 내민 사진에 가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모두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말했다.
"역시……. "

도쿄에서 왔다던 본점 사장이 그 사진을 손에 들고
눈 앞에 있는 베이지색 벽과 몇 번이나 비교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진짜로 이런 게 있구나……. "

그러자 그때 누군가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긴장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몸을 움찔하며 반응했다.

"제 전홥니다. "
점장이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자
모두 한결같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끊겼네요. "
그리고 다음 순간, 점장의 얼굴빛이 변했다.
"여기는 휴대폰이 안 터지는데……. "

일주일 후, 보름달이 뜬 밤.
G씨와 나는 다시 한 번 그 가게에 가서
영을 봉인하는 의식을 치렀다.

흰 기모노와 하카마를 입고 긴 머리를 뒤로 묶은 G씨가
방의 네 모서리에 부적을 붙였다.
신주(神酒)와 비쭈기나무 가지를 테이블 위에 놓고 축문(祝詞)을 읽었다.
신토(神道) 형식의 제령(除霊)의식이었다.

몇 주가 지나고, 이자까야 점장과 점원들이 G씨에게 인사하러 와서
"그 뒤로 이상한 일은 더 이상 안 생기게 되었습니다." 라고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갔다고 한다.

※ 하카마(袴) : 기모노 위에 입는 바지. 양쪽 다리가 나뉘지 않은 치마 모양도 있다.
주름이 잡혀 있고 통이 크다. 검도복 바지, 일본 무녀복 바지 등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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