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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문제 발생시 삭제합니다.
신미미부쿠로(新耳袋) - 현대 백물어 - 첫번째 밤
키하라 히로카츠, 나카야마 이치로 / 카도카와 문고
'두려움'의 비밀
해설을 써 달라기에 흔쾌히 수락했지만
약속한 날짜를 한참 넘기고도 시작조차 못했다.
묘하게 일이 겹쳐서 시간을 낼 수 없었다는 사정도 물론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이 책에 손을 댈 기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설을 쓰려면 어떻게든 다시 읽어야만 한다.
그 '다시 읽는다'는 것이 어쩐지 망설여졌던 것이다.
처음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선명한 것이 아직 내 안에 남겨져 있다.
공동저자인 두 사람은 몇 번이나 만난 적이 있기도 하고,
이 책에서 떨어져 변화구로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쓰자니
다른 것이 마음에 걸린다.
왜 다시 읽어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하는 문제다.
확실히 무서운 책이다.
끊임없이 등에 한기를 느끼면서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경우는
적어도 나에게는 있을 수 없다.
나 자신도 여러 괴기소설을 썼고,
단지 무서운 것 뿐이라면
더 무서운 이야기를 얼마든지 알고 있다.
그리고 소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다시 읽기도 했다.
실화니까 너무 생생해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다소 관계가 있을 법하다.
이 책은 실화괴이담의 선구(先駆)인
'미미부쿠로(耳袋)'라는 에도시대 책에 경의를 표하며
'신미미부쿠로(新耳袋)'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사실은 이 두 가지 책을 연결하는 책이 따로 있다.
다나카 코타로(田中貢太郎)가 정리한 '일본괴담실화'가 그것이다.
아주 두꺼운 책인데, 짧은 이야기가 빽빽히 수록되어 있다.
내가 읽은 지는 30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단 한번밖에 읽지 않았는데도
많은 이야기가 뇌리에 새겨져 잊혀지지 않는다.
읽어본 직후, 나는 그 책을 서가 속 깊이 봉인하고 말았다.
검은 상자에 녹색 글자로 '일본괴담실화'라고 인쇄된 케이스조차 보기 싫었다.
참으로 기분나쁜 책이다.
이렇게 쓰면 오히려 자극받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분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다.
사람 마음의 잔혹성과 잔인함을 알게 될 뿐이다.
지어낸 이야기라면 여유를 갖고 읽어내려갈 수 있겠지만
진실이라는 것을 안 이상, 가슴이 막힌다.
다나카 코타로 씨가 왜 그런 이야기 수집에 열중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실화라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사실'이라는 절대적인 강점과
스토리성이 희박한 '현실'을 함께 가지고 있다.
선택을 잘못하면 지저분하고 질척질척한 독(毒)만 눈에 띄게 된다.
그러나 '신미미부쿠로'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런 인상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러니 '일본괴담실화'와 같은 이유로
다시 읽기를 주저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찜찜한 응어리가 약간이라도 나에게 있었으면
애초에 해설을 쓰겠다고 수락했을 리가 없다.
그 증거로 이 '신미미부쿠로'는 지금까지 나온 전권을
서가에서 눈에 띄는 장소에 나란히 꽂아 두었다.
다시 읽지 않는 것 뿐이다.
'신미미부쿠로' 시리즈는 모두
신간이 나올 때마다 그 자리에서 읽고
경악하거나 공포를 즐기곤 했다.
사실은, 어째서 읽고 싶지가 않은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제 막 다시 읽기 시작한 참이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내가 그려져 있다.
어쩐지 철학 흉내를 내는 것 같지만 정말로 그런 것이다.
다나카 코타로의 책에는
불쾌해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타인의 인생이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구제불능 살인자 열전을 읽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신미미부쿠로'에 등장하는 자들은
나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과 갑자기 맞닥뜨리고
이상한 인연에 방황하고
사자(死者)와 접촉하고
자기 눈을 의심한다.
내가 똑같은 체험을 해도 같은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의 무관심, 무능함, 박정(薄情)함, 소심함,
타인에게는 가벼운 독이 될 수도 있는
호기심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신미미부쿠로' 저자 두 분은 이 이야기들을 듣고 쓰면서
자신들의 해석이나 의문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침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것이 우연히 사람 마음의 보편적인 부분을 짜내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두 분이 글을 덧붙이면 그것은 두 분이 이야기하는 괴이담이 되고 만다.
책을 읽는 나는, 그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기만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의 비밀도
사실은 바로 그 점에 있다.
읽어나가면서 모든 것이 내 체험이 되어간다.
만들어진 이야기같은 빈틈이 없다.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문자형식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가본원(本家本元)인 '미미부쿠로'도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 저자의 추론이나 해석이 가끔 얼굴을 내비친다.
그래서 독자도 한 숨 돌리면서 읽게 된다.
다나카 코타로처럼 암흑이 소용돌이치는 것도 아니다.
'신미미부쿠로'를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들자면
죽은 친지의 사진이 몇 장이나 붙어있는 앨범을 안고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 친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진을 보고 싶은 기분과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한다.
자기 마음을 확인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로는 괴롭다.
예전에 나는 이 책을 '무섭고 재미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딱 잘라 평했다.
처음 읽고 난 후의 솔직한 감상이었지만 지금은 꽤 다르다.
사람은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진짜 자기 자신을 만난다.
이 책에는 진짜 자신을 보기 위한 거울이 장치되어 있는 것이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삭제합니다.
신미미부쿠로(新耳袋) - 현대 백물어 - 첫번째 밤
키하라 히로카츠, 나카야마 이치로 / 카도카와 문고
'두려움'의 비밀
타카하시 카츠히코(高橋克彦:소설가)
해설을 써 달라기에 흔쾌히 수락했지만
약속한 날짜를 한참 넘기고도 시작조차 못했다.
묘하게 일이 겹쳐서 시간을 낼 수 없었다는 사정도 물론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이 책에 손을 댈 기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설을 쓰려면 어떻게든 다시 읽어야만 한다.
그 '다시 읽는다'는 것이 어쩐지 망설여졌던 것이다.
처음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선명한 것이 아직 내 안에 남겨져 있다.
공동저자인 두 사람은 몇 번이나 만난 적이 있기도 하고,
이 책에서 떨어져 변화구로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쓰자니
다른 것이 마음에 걸린다.
왜 다시 읽어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하는 문제다.
확실히 무서운 책이다.
끊임없이 등에 한기를 느끼면서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경우는
적어도 나에게는 있을 수 없다.
나 자신도 여러 괴기소설을 썼고,
단지 무서운 것 뿐이라면
더 무서운 이야기를 얼마든지 알고 있다.
그리고 소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다시 읽기도 했다.
실화니까 너무 생생해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다소 관계가 있을 법하다.
이 책은 실화괴이담의 선구(先駆)인
'미미부쿠로(耳袋)'라는 에도시대 책에 경의를 표하며
'신미미부쿠로(新耳袋)'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사실은 이 두 가지 책을 연결하는 책이 따로 있다.
다나카 코타로(田中貢太郎)가 정리한 '일본괴담실화'가 그것이다.
아주 두꺼운 책인데, 짧은 이야기가 빽빽히 수록되어 있다.
내가 읽은 지는 30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단 한번밖에 읽지 않았는데도
많은 이야기가 뇌리에 새겨져 잊혀지지 않는다.
읽어본 직후, 나는 그 책을 서가 속 깊이 봉인하고 말았다.
검은 상자에 녹색 글자로 '일본괴담실화'라고 인쇄된 케이스조차 보기 싫었다.
참으로 기분나쁜 책이다.
이렇게 쓰면 오히려 자극받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분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다.
사람 마음의 잔혹성과 잔인함을 알게 될 뿐이다.
지어낸 이야기라면 여유를 갖고 읽어내려갈 수 있겠지만
진실이라는 것을 안 이상, 가슴이 막힌다.
다나카 코타로 씨가 왜 그런 이야기 수집에 열중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실화라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사실'이라는 절대적인 강점과
스토리성이 희박한 '현실'을 함께 가지고 있다.
선택을 잘못하면 지저분하고 질척질척한 독(毒)만 눈에 띄게 된다.
그러나 '신미미부쿠로'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런 인상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러니 '일본괴담실화'와 같은 이유로
다시 읽기를 주저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찜찜한 응어리가 약간이라도 나에게 있었으면
애초에 해설을 쓰겠다고 수락했을 리가 없다.
그 증거로 이 '신미미부쿠로'는 지금까지 나온 전권을
서가에서 눈에 띄는 장소에 나란히 꽂아 두었다.
다시 읽지 않는 것 뿐이다.
'신미미부쿠로' 시리즈는 모두
신간이 나올 때마다 그 자리에서 읽고
경악하거나 공포를 즐기곤 했다.
사실은, 어째서 읽고 싶지가 않은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제 막 다시 읽기 시작한 참이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내가 그려져 있다.
어쩐지 철학 흉내를 내는 것 같지만 정말로 그런 것이다.
다나카 코타로의 책에는
불쾌해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타인의 인생이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구제불능 살인자 열전을 읽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신미미부쿠로'에 등장하는 자들은
나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과 갑자기 맞닥뜨리고
이상한 인연에 방황하고
사자(死者)와 접촉하고
자기 눈을 의심한다.
내가 똑같은 체험을 해도 같은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의 무관심, 무능함, 박정(薄情)함, 소심함,
타인에게는 가벼운 독이 될 수도 있는
호기심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신미미부쿠로' 저자 두 분은 이 이야기들을 듣고 쓰면서
자신들의 해석이나 의문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침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것이 우연히 사람 마음의 보편적인 부분을 짜내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두 분이 글을 덧붙이면 그것은 두 분이 이야기하는 괴이담이 되고 만다.
책을 읽는 나는, 그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기만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의 비밀도
사실은 바로 그 점에 있다.
읽어나가면서 모든 것이 내 체험이 되어간다.
만들어진 이야기같은 빈틈이 없다.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문자형식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가본원(本家本元)인 '미미부쿠로'도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 저자의 추론이나 해석이 가끔 얼굴을 내비친다.
그래서 독자도 한 숨 돌리면서 읽게 된다.
다나카 코타로처럼 암흑이 소용돌이치는 것도 아니다.
'신미미부쿠로'를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들자면
죽은 친지의 사진이 몇 장이나 붙어있는 앨범을 안고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 친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진을 보고 싶은 기분과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한다.
자기 마음을 확인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로는 괴롭다.
예전에 나는 이 책을 '무섭고 재미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딱 잘라 평했다.
처음 읽고 난 후의 솔직한 감상이었지만 지금은 꽤 다르다.
사람은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진짜 자기 자신을 만난다.
이 책에는 진짜 자신을 보기 위한 거울이 장치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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