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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번역

ⓧ괴담 신미미부쿠로 - 친구

백작하녀 2009. 4. 22. 06:54

저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무단번역이므로
저작권 문제 발생시 삭제합니다.


신미미부쿠로(新耳袋) - 현대 백물어 - 세번째 밤
키하라 히로카츠, 나카야마 이치로 / 카도카와 문고

H씨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친구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언제나 함께 노는 이웃 아이 K군,
또 한 명은 큰 저택에 사는, 소위 말하는 귀한 집 자식 J군이었는데
공부는 반에서 1등이었고 늘 학원에 다니는 아이였다.

그래서 항상 J와 같이 놀 시간이 없었고, 어쩌다 한 번 놀아도
"앗, 나 이제 학원 가야 돼" 라며 중간에서 빠져서
J와 실컷 놀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가을날, H씨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
자전거를 타고 K와 매일 노는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미술관 부지 내에 있는 큰 연못이었는데
출입금지된 곳이었지만 철망이 망가져서 쉽게 들어갈 수 있는데다가
경비원도 거의 둘러보지 않았고
연못 안에는 물고기와 가재 같은 게 잔뜩 있어서
언제나 몰래 들어가서 놀았던 것이다.

연못에 첨벙첨벙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노는데
"거기서 놀면 안돼. "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연못가에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반짝반짝한 흰색 선수용 자전거를 세워놓고
철망 쪽에 J가 앉아 있었다.

"거기서 놀면 안된다고. "
J가 다시 말했다.

"좀 냅둬라. 그치? "
그렇게 말하고 H씨는 연못 안에서 K와 서로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여기서 보고 있어도 돼? "
라고 J가 물어서,
"응, 그래라. "
라고 대답하고 고기잡이에 열중했다.

J는 철망 너머에서 무릎을 가슴에 붙이고 앉아 가만히 H씨와 K를 보고 있었다.
"너도 구경만 하지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놀자. "
"안돼. 거기 들어가면 혼난단 말이야. "
J는 철망 밖에서 연못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는데, J는 아직 거기 앉아 있었다.
"너 학원 안 가도 돼?" 라고 묻자
아니, 하고 고개를 저었다.

"학원 안 갈 거면 이리 와서 놀자. "
라고 다시 꼬드겼지만 J는 여전히 거기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마침내 어두워졌다.
이제 집에 갈까 하고 연못가에 올라갔더니
"이제 갈 거야? 그럼 나도 가야겠다. "
하고 J가 일어나서 선수용 자전거에 올라탔다.

H씨와 K도 철망 밑으로 기어나가서 각자 자기 자전거 핸들을 잡고
무심코 J가 있던 곳을 봤는데, 이미 J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 되게 빠르네. "
"학원 때문에 급하게 간 거 아니야? "
둘이서 그런 대화를 하면서 집으로 갔다.

저녁을 먹는데 아버지가 집에 오셨다.
"야, S씨 댁의 J가 큰일났다더라. "
느닷없이 아버지가 꺼낸 말이었다.

"J가 왜? "
라고 H씨가 묻자,
"교통사고래. 뉴스 좀 틀어 봐라. "
라는 아버지 말에, TV 채널을 돌렸다.

"J가 어떻게 됐는데? "
라고 H씨가 다시 물어보니

"죽었대. "
라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뭐! 언제? "
"오늘. "
"그치만 J랑 아까까지 같이 있었어" 라고 말하려는데
TV의 지방뉴스에 사고 현장이 나왔다.

그 새하얀, J가 아끼던 선수용 자전거가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J의 얼굴 사진이 화면에 나왔다.
즉사……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죽었구나. "
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야. J랑 미술관 연못에서 같이 있었어. "
"그게 언젠데? "
"학교에서 나왔을 때 4시쯤이었으니까
4시 반에서 6시 반 정도까지는 같이 있었어. "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J는 3시 50분쯤에 사고가 나서 죽었다고 뉴스에도 나왔잖아. "
아버지는 H씨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아니야. 같이 놀았어. "
"어떻게 같이 노냐? "
"진짜로 같이 놀았어! "
"넌 왜 그런 거짓말을 하니? "
결국 혼이 났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기 전에 또 아버지와
같이 놀았다, 그럴 리가 없다며 한번 더 말다툼을 했다.
석연찮은 기분으로 학교에 갔더니 K가 먼저 와 있었다.

"너, 뉴스 봤어?" 라는 H씨의 물음에
"봤어" 라고 K가 대답했다.

"J가 죽은 거 알아? "
"응, 알아. 우리반 발칵 뒤집혔어. "
"어제 분명히 우리랑 같이 놀았지? "
"그랬지. "
"우리 셋이 같이 있었지? "
"응, 같이 있었어. 나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그 얘길 했는데 안 믿어 줘서 싸웠어. "
"너도? 나도 아빠랑 싸웠어. "

그때, K가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녀석, 보통 때랑 달랐지. "

아마도 J는 평소에도 우리와 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학원에 다녔다.
죽은 뒤에야 처음으로 우리와 놀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도 J를 잊을 수 없다고 H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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