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저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무단번역이므로
저작권 문제 발생시 삭제합니다.


신미미부쿠로(新耳袋) - 현대 백물어 -
세번째 밤(第三夜)
키하라 히로카츠, 나카야마 이치로
카도카와 문고

제62화. 사라진 디스켓(※)
(※원문에서는
플로피디스크(フロッピーディスク)였으나,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쓰이는 단어
디스켓(diskette)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혹시 디스켓이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께서는
이 글에 나오는 '디스켓'이라는 단어를 클릭하시면
팝업창으로 설명이 뜹니다.)

'신미미부쿠로 세번째 밤'의 원고를
집필중이었을 때 생긴 일이다.

한밤중에 내 방에서 워드프로세서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화장실 바로 앞에 있는 책장 쪽에서
무슨 기척을 느꼈다.

오랫동안 '신미미부쿠로' 작업을 해 왔지만
내 방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취재하면서 자주 듣던
'확실히 누가 있는' 느낌이 이거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건 분명히 기분 탓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그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스쳐 지나 화장실로 향했다.
역시 그곳을 지나갈 때 등골이 오싹한 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오한이 퍼졌다.

긴 머리를 얼굴에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서 있는
여자 이미지가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는
더 이상 그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다음날 생긴 일이다.

밤중에 전화로 공저자(共著者)인 파트너와 정보를 교환하다 보니,
영화 '여우령', '링' 감독인 N씨(※나카타 히데오(中田秀夫))와
각본가 T씨(※타카하시 히로시(高橋洋)) 이야기가 나왔다.
전에 어느 잡지 기획에서 대담(對談)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 방에는 '빅 컨츄리(The Big Country)'라는
옛날 서부영화 사운드트랙 CD를 틀어 놓았다.
전화를 끊고 곧바로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으려고 욕실에 들어갔다.
잠시 후, 욕실에서 나와 보니 음악이 꺼져 있었다.

오디오에서 CD를 꺼내려고 꺼냄 버튼을 누르자
디스크 트레이가 나왔다.
CD를 손으로 집으려다가 경악했다.

CD 트레이에 '링' 사운드트랙 CD가 얹혀 있었던 것이다.

몸이 굳어서 옆에 있는 테이블을 봤다.
'빅 컨츄리'와 '링' CD 케이스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링' CD를 CD장에서 꺼낸 기억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빅 컨츄리' CD 케이스를 열어 보니,
아까까지 오디오 속에서 재생되고 있던 CD가
얌전히 CD 케이스에 들어 있지 않은가.

'그럼 난 '링' OST를 들은 건가? '
단언하건대 그런 일은 없다.

아무리 내가 괴담집 저자라도,
한밤중에 '신미미부쿠로' 원고를 쓰면서
'링'의 공포 사운드를 들을 생각은 꿈에도 없다.

파트너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왜? "

"갑작스럽지만 뭐 좀 물어볼게.
아까 통화할 때, 내 방에 음악 틀어놓은 거 알고 있었어? "

"응, 오랜만에 듣는 서부영화 음악이었는데 뭐였더라?
'빅 컨츄리'인가? 그런데 그게 왜? "

"역시 그랬구나. 사실은 말이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게 '링' OST CD로 바뀌어 있었어……. "

파트너는 "말도 안 돼!" 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냥 이해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링' 얘기를 했지.
이제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가 않아.
애초에 지금까지 너무 잠잠했던 걸 수도 있지……. "

이튿날 아침.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고,
이제 어젯밤에 쓰던 원고 뒷부분을 써 볼까 하고
워드프로세서 앞에 앉았다.

그런데 원고 파일을 저장한 디스켓이 없었다.
간밤에는 워드프로세서 전원을 끌 때
분명히 디스켓을 워드프로세서에서 꺼내
케이스에 넣어서 테이블에 놔뒀는데
그 케이스가 보이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온 방 안을 뒤졌지만 없었다.
별로 정리정돈이 잘 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방이지만
디스켓은 항상 작업용 책상에서 손이 닿는 범위에 두었다.
모든 디스켓을 하나하나 워드프로세서에 꽂고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신미미부쿠로 세번째 밤'을 기록한 디스켓만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3일 동안 찾은 덕분에 집은 깨끗이 청소가 되었다.
그러나 디스켓은 홀연히 자취를 감춘 채 나오지 않았다.
차곡차곡 쌓아온 65화 분량의
'신미미부쿠로 세번째 밤' 원고가 통째로…….

디스켓이 이 집에서 없어질 만한 이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디스켓만 찾고 있을 수도 없었다.
한 화만이라도 다시 원고를 쓰려고
취재가 끝난 카세트 테이프를 오디오 데크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딸깍, 그런 소리가 나고 재생이 되어야 하는데
테이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고장났나 하고 정지 버튼을 눌렀는데
다시 튀어나와야 할 재생 버튼이 눌러진 채로 나오지 않았다.
꺼냄 버튼도 전혀 듣지 않았다.

오디오 데크 한 칸이, 소중한 취재 테이프가 들어간 채
작동도 하지 않고 테이프를 꺼내지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담당 편집자 T씨에게 전화를 했다.
"디스켓이 없어지고 카세트는 맛이 갔어. "

담당자가 화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역시 고사를 지내야겠어요. "

그 다음주에 출판사 근처의 신사(神社)에서
저자 두 명과 편집 담당자, 이렇게 셋이서 고사를 지냈다.
탈고(脫稿) 전에 고사를 지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05-17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