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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미부쿠로(新耳袋) - 현대 백물어 -
세번째 밤(第三夜)
키하라 히로카츠, 나카야마 이치로
카도카와 문고

제86화. 머리카락 한 움큼

벌써 20년 이상 된 이야기다.
A코 씨의 고모(※)가 원인불명의 열병으로
몸져 눕고 말았다.

의사는, 아무튼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지만
고모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포기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딸을 살리고 싶은 마음 하나로
친척들을 불간(佛間)방에 불러모아
당신께서 직접 불경을 읽으며 회복을 기원했다고 한다.

그러자 불간 바로 옆방에서
숨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이 누워 있던 고모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무시무시한 형상이 되어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이불 위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곁에서 간호하던 사람이 말릴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모두들 깜짝 놀라면서도, 날뛰는 고모를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했지만
이게 과연 지금까지 중병으로 누워 있던 사람의 힘인가 할 만큼
어마어마한 힘으로 주위 사람들을 떨쳐냈다.

"이건 뭔가 씌인 게야. "
"어렵겠구만. "
친척들은 법석을 피웠다.
모습이 딴판으로 변한 고모는 더욱 더 날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그 난리를 무시하는 것처럼 불단 바로 앞에서
불꽃이 활활 타오르듯이 계속 불경을 읽는 것이었다.

그러자 불간 천장 쪽에서
바스락바스락 하는 묘한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할아버지가 펴 둔 경문(經文) 위에
뭔가 사르락 하고 떨어졌다.

잘 보니, 머리카락 한 움큼이었다.
머릿결, 윤기, 길이로 보아
젊은 여성의 검은 머리인 듯 했다.

할아버지는 순간적으로 앗 하고 놀라긴 했지만
서두르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그 머리카락을 불경책 페이지 사이에 꽉 끼우고는
곧바로 일어나 툇마루에 나갔다.

그러나 할아버지 뒤에서 고모를 누르고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할아버지가 일어나시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대체 어디로 가시나 하고, 몇 명이 할아버지 뒤를 졸졸 따랐다.

할아버지는 그대로 정원에 나가
불경책에 끼워 둔 머리카락을 땅에 내던졌다.

그러자 공중에 뜬 그 머리카락 뭉치에서
여우가 불쑥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 여우는 털이 새하얗고 꼬리가 몇 개나 있었는데
그 꼬리를 부채꼴로 활짝 펼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친척들 모두가 보았다.

그 순간, 이불 위에는
어리둥절한 고모가 있었다.
그 날 안에 고모는 그때까지 오랫동안 앓아누웠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건강해졌다고 한다.

분명히 정원에 뿌렸던 머리카락은
땅바닥에 한 올도 없었다고 한다.



※원문은 숙모(叔母)였으나,
우리나라에서 '작은아버지(숙부)의 부인'이라는 뜻만 있는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여동생'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딸을 살리고 싶은 마음 하나로
(원문 : おじいさんは、なんとか娘を助けたい一心で)'라는 구절을 근거로
'고모'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모와 외할아버지'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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