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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미부쿠로(新耳袋) - 현대 백물어 -
세번째 밤(第三夜)
키하라 히로카츠, 나카야마 이치로
카도카와 문고

 

제98화. 촬영장의 밤

 

나는 전에 '공포의 백물어'라는

TV프로그램의 기획 · 구성을 담당했다.

그때 음성을 담당했던 N씨의 체험담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일이다.

N씨는 당시 VE(비디오 엔지니어)라서

야외촬영만 하러 다녔다고 한다.

큰 비디오 데크와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맨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9월 늦더위가 심한, 푹푹 찌는 어느 날이었다.

N씨 일행은 촬영스탭 5명과 탤런트 2명 팀으로

3일 동안 교토와 효고현 일대를 돌며 현지촬영을 했다.

 

프로그램 내용은 향토음식을 소개하는, 이른바 맛집 프로그램.

그런데 3일 내내 비가 오고

촬영 자체도 왠지 잘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현지촬영 이틀째에 생긴 일이다.

일행은 교토와 효고현 경계선에 있는 어느 명소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에도(江戸)시대(1603~1867년)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여관이 남아 있다.

스탭들은 그 여관을 취재한 후, 밤에 거기서 숙박하기로 되어 있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마을과 뚝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여관에 도착했다.

꽤 큰 3층 건물이었다.

옛날에 그 일대는 큰 길이었다는데

교토에 가거나, 혹은 고향에 돌아가는

막부 말기(1854~1867년)의 번사(藩士 : 지방 영주의 부하)들이

그 여관을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품격있고 시대가 느껴지는 건물이었다고 한다.

 

여관 정면 현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자,

낮인데도 실내가 어둡고 오렌지색 알전구가 드문드문

안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현관 안쪽의 로비와 복도에는 도검류와 갑옷, 투구,

또한 사슴, 곰 등 박제가 장식되어 있고

왠지 무거운 공기가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관인데도 인기척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비를 피하면서 촬영 기자재를 현관에 들여놓고 있는데

여종업원이 불쑥 나왔다.

그리고 N씨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쪽 깊이 있는 방에는 전골 요리가 준비되어 있어서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이 끝났을 때가 밤 7시쯤.

그 후에는 잘 때까지 자유시간이었다.

 

술도 마시고 와와 떠들고 있는데 여종업원이 찾아왔다.

"저……. 곧 저희 여관 폐점 시간입니다.

술 추가 주문은 지금 말씀해 주세요. "

 

"폐점이라니……? 직원분들이 여기서 안 주무시고 출퇴근하시나요? "

 

※대부분의 일본 전통여관은 종업원들이 여관에 있는 숙소에서 생활함.

 

종업원들이 모두 출퇴근하는 여관이라니 처음이었다.

물어보니 그 여관은, 여관 형식은 갖추고 있었지만

꽤 오래 전부터 숙박 손님을 받지 않고

그저 향토 박물관처럼 쓰고 있었다.

그날은 TV 취재 때문에 특별히 여관으로 영업한 것이라고 했다.

 

"그럼 이 넓은 여관에 저희밖에 없나요? "

"예, 전세 내신 겁니다. "

여종업원은 농담처럼 웃었다.

 

"그래서 9시가 되면 저희는 모두 퇴근하고

밖에서 문을 잠글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 방이나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

목욕탕 물도 데워 놨고요. "

할 수 없이 일본술과 맥주를 추가 주문했다.

 

9시가 되었을 때, "그럼 먼저 실례합니다" 하고

아까 그 여종업원을 비롯한 종업원들이 인사하러 왔다.

그 후, N씨 일행 중 누군가 현관에 가 봤는데

정말 밖에서 문을 잠가 놓아서

한 발짝도 여관 밖에 나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밤중이 되었다.

다음날도 촬영이 있어서 모두 목욕을 하고 자기로 했다.

그런데 목욕탕에 간 사람들이, 겨우 5분도 안 됐는데 돌아왔다.

 

"벌써 목욕 다 하셨어요? "

N씨가 묻자,

"여기 목욕탕, 왠지 기분이 안 좋아서 못 있겠어. "

라며 모두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N씨도 제일 마지막에 가 봤는데, 탈의실에서 욕실로 들어가는 문을 연 순간

'앗, 여긴 안돼!' 라고 느꼈다고 한다.

 

편백나무로 만든 훌륭한 목욕탕인데

왠지 무겁고 이상한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 목욕탕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창문이 없어서 이상한 느낌이 드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목욕탕에 들어가기를 단념하고 방에 돌아가 보니

PD가 일행들에게 방을 정해주고 있었다.

그날 밤에는 큰 여관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N씨는 카메라맨 A씨와 같은 방을 쓰게 되어서

지정된 방에 들어갔다.

 

……이상하게 천장이 낮았다.

"이거 있잖아, 사무라이가 칼을 못 휘두르게 머리를 쓴 거야.

봐, 칼을 뽑아서 이렇게 치켜들면 천장에 칼끝이 걸리겠지?

방 안에서 칼싸움을 할 수가 없어.

에도시대부터 있었던 유서깊은 가게다운 구조야. "

라고 A씨는 칼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감탄했다.

 

N씨는 문득 방 안쪽에 있는 경대(鏡臺)에 눈길이 갔다.

새빨간 커버를 덮어 놓았는데, 커버 정면에는 학이 수놓여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왠지 오싹하게 등줄기에 오한이 퍼졌다.

 

'저 거울 근처에서는 자기 싫다. '

그런 기분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A씨는 벽장을 싹 열고 이불을 꺼내고 있었다.

N씨도 이불을 꺼내, 경대에서 먼 쪽에 이불을 깔고 잤다.

 

'숨막혀……. '

N씨는 헉 하고 튕겨오르듯이 일어났다.

꼬마전구의 희미한 빛이 방을 비췄다.

방 안은 찌는 듯이 더웠다.

에어컨은 붕― 하는 소리가 났지만

시원한 바람은 전혀 오지 않았다.

에어컨 소리에 섞여, 비가 주룩주룩 오는 소리가 여관을 감싸고 있었다.

 

옆에서는 A씨가 깊은 숨을 쌕― 쌕― 쉬며 자고 있었다.

'이렇게 기분나쁜 분위기 속에서 잘 수 있다니, 끝내준다, 이 사람. '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바로 그때,

 

"으아악―! "

비명소리가 옆방에서 울려퍼졌다.

잠자던 A씨도 눈을 번쩍 떴다.

 

"무슨 일이야? "

A씨는 벌떡 일어나서 불을 켜고 방을 나갔다.

N씨도 그 뒤를 따랐다.

 

옆방에서 AD가 울부짖고 있었다.

"나, 이 방에서 안 잘래―. "

옆에서는 그 조연출과 같은 방을 쓰기로 한 PD가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왜 그래? "

A씨가 묻자, PD가 대답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나쁜 꿈을 꿨나 보지. "

"꿈 아니야! 꿈 아니야! 여기 싫어! "

AD는 더 크게 소리쳤다.

 

"자, 진정하고. 무슨 일이야? "

A씨와 PD가 타일렀지만 AD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 방에서 나가고 싶다고요! "

라고 악을 썼다.

 

어쩔 수 없이 방에서 데리고 나가

현관 앞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혔다.

조금 진정이 된 AD는 그 사연을 드디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뒤척이기만 하고 잠을 못 잤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벽장 미닫이문에 눈길이 갔다.

미닫이문 창호지에 무슨 무늬가 있었다.

 

'어라? 저 벽장 문, 무늬 없이 새하얀 것 아니었나……? '

라고 생각했는데, 중국 산수화 같은 것이 벽장 문에 떠올랐다.

'저긴 저런 게 없었는데……. '

 

그러자 산수화 속에 사람이 나타났다.

나이든 스님 같은 옆모습이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벽장 문에서 눈을 돌리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후, 벽장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내가 본 게 뭐지? 잘못 본 거야. 잘못 봤어. 그건 무늬 없는 창호지문이야. '

그러자 등 뒤에 무슨 기척이 느껴졌다.

헉 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무늬 없는 창호지문이 거기 있었다.

 

'역시 그 그림은 내가 착각한 거였어. '

그렇게 생각했는데 슥― 하고 벽장 문에 또 뭔가 떠올랐다.

 

눈을 감은 여자 얼굴이었다.

머리카락이 난 이마 가장자리는 안 보였지만

확실히 얼굴 윤곽과 눈, 코, 입이 있었다.

 

그것이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AD를 빤히 보고는 히죽 웃었다.

 

'으으으아악! '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충격이 전신을 꿰뚫었다.

혼비백산해서 옆에 잠든 PD를 깨우려고 몸을 돌렸다.

 

거기 또 하나 있었다.

 

PD 뒤에 까까머리 남자아이같은 검은 것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것이 '달빛'같은 빛을 받아

몸체의 윤곽이 똑똑히 보였다.

AD가 비명을 지른 것은 그 직후였다고 한다.

 

"그건 꿈이야. 나는 아무 느낌도 안 들었다고.

게다가 달빛이라니, 지금은 비가 오는데. "

PD는 꿈이라고 강조했지만, AD는

"그 방에 다시 가느니 차라리 이 소파에서 자는 게 낫겠어요. "

라며 말을 듣지 않았다.

 

"좋아. 그럼 넌 옆방에서 N이랑 자.

내가 그 방에서 잘 테니까. "

A씨가 방을 바꿔 준다고 설득해서

그제서야 겨우 AD는 고개를 끄덕였다.

 

N씨의 방에 들어간 AD는 갑자기

"저 경대, 기분나쁘네요. "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할 수 없이 N씨는 조금 전까지 A씨가 자던,

경대와 가까운 이불에 누웠다.

AD는 자리에 눕고 얼마 안 있어

피곤했는지 푹 잠든 것 같았다.

쌕― 쌕― 하는 깊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N씨는 아무래도 경대 근처에서 자기 싫어서

으쌰 하고 이불을 안고, AD가 잠든 자리를 중심으로

경대 반대쪽에 자기 이불을 다시 깔았다.

전깃불은 완전히 끄지 않고, 침침한 꼬마전구만 켜 놓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자려고 했는데 여전히 잘 수가 없었다.

변함없이 찌는 듯 더웠고, 쿵 내려앉은 묵직한 공기가 방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베개가 땅 속으로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 N씨를 덮쳤다.

비탈길에 이불을 깔고 머리를 낮은 쪽으로 해서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문득 TV 브라운관이 눈에 들어왔다.

경대 반대쪽에 있는 TV가, N씨의 눈 앞에 있는 것이었다.

꺼져 있는 그 TV 브라운관에 N씨 뒤쪽이 비쳤다.

 

침침한 어둠 속에 사람이 서 있었다.

'할아버지'라는 이미지가 퐁 떠올랐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노인이 AD의 머리맡에 서서 뭔가를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노인이 무슨 가루를 흔들어서

AD의 얼굴에 뿌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자를 열어 그 속에 있는 상자를 꺼내고, 또 그 속에 있는 상자를 꺼낸다.

그리고 또 다시 그 속에 상자가 있고…….

그런 것을 반복하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는 상자가 없었지만, 그런 손놀림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는데

그럴 때마다 AD가 "음―" 하는 게 괴로워 보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잘그락 잘그락 잘그락 잘그락…….

누군가 자갈을 꾹꾹 밟으며 정원을 걷는 소리가 났다.

 

잘그락 잘그락 잘그락 잘그락…….

상당히 빠른 걸음이었는데, 그게 아무래도

여관 둘레를 빙빙 도는 것 같았다.

TV 브라운관에는 아직 노인이 비치고 있었다…….

 

머릿속이 뱅글뱅글 돌아서 기절했는지

놀라서 정신을 차려 보니 아침이었다.

 

아침식사 때, 그 이야기를 해 봤는데

AD는 방을 바꾸고 눕자마자 깊이 잠들어서

그 노인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누군가 자갈 위를 걷는 소리는 PD도 들었다.

경비원인가 했지만 여관을 그렇게 빨리 빙빙 도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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